흔하디 흔한 갈등

2025. 1. 31. 16:28무심한 날들

병원에서 잠만 잤잖아.
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마음졸였던 날들과 병원을 오가며 했던 수많은 생각들과 걱정들이  증발하고 말았다. 나는 쓸데없는 걱정들을 했다. 나는 쓸데없이 심각했고 쓸데없이 슬펐고 쓸데없이 온갖 잡동사니를 검색했다. 그 시간들은 이 땅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으므로 뚝 잘라져 묻어둘 수 밖에 없다.

그랬다. 나는 요리하진 못했다. 나는 내 수준에서 내 일을 다 했지만 그에겐 그저 음식데우기에 지나지 않았다. 48시간동안 그는 나를 평가했다.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며.

네가 얼마나 나를 챙겨주는지 지켜볼게

나는 눈코뜰새 없이 바빴고 그는 바쁜 나에게 자기가 불편하니 제발 쉬라고 말했다. 그와는 별개로 그는 내가 요리도 하고 다림질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나는 수퍼우먼이 아니라고 말했다. 두어번 반복했다. 그랬더니 응 알겠어. 더이상 그만해라고 평소처럼 해결을 했다.

저녁한끼를 그가 했다. 심술이 가득해서. 계란 후라이를 해달라는 내게 너는 마지못해 했다. 네가 평소에 해주던 계란후라이는 사랑이었는데, 오늘 네가 해준 계란을 보니 짜증이 한가득이다.

나는 네가 참 신기하다.
옷을 사줬더니 다림질이 필요하다고
너는 왜 다려주지도 않냐는 말투와 표정
옷을 다릴 수 있지만, 마치 그 일은 네일이야라는  제스쳐에 반응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난 단 한번도 내 옷이 구겨졌을 때 당신에게 왜 내 옷을 다리지 않냐고 말한적도 생각한적도 없다.

네 머릿속에 나는 아무렇게나 부려먹어도 되는 하인쯤 되나보다. 나는 네 그런 표정을 보면 이렇게 밖에 생각이 안된다. 99.9퍼센트.

왜 청소하냐는 반응. 왜 정리하냐는 반응. 나는 늘어놓지 않았어. 내가 한거 아니야.

응 나도 내가 한건 아니야.
내가 하고싶은 말..

주말 내내 반쯤 기댄채 소파와 한몸이 되어 하루종일 일하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자기에게 행여나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지만 끝끝내 소파를 벗어나진 않는다. 너는 아프다. 그건 사실이다. 아프니까 그냥 가만히 있는건 괜찮은데, 나 역시 노는 사람은 아니다.

너는 내가 노는 사람처럼 보이나보다.

자기는 내일 출근해야한단다..

응 나도 출근해..

챙겨줄 수 있지만, 아무런 고마움도 피드백도 없으니 할 맛이 안나는게 정답이다. 너는 그런 말을 할 줄 모른다고 했지..그럼 나도 마찬가지야..나도 아무런 고마움도 감정도 없는 당신에게 무한정 애정을 쏟을만큼 시간도 열정도 에너지도 없다. 바닥을 치닫는 무기력을 간신히 끌어올려 살고 있어.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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