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 00:32ㆍ무심한 날들
infp가 살기엔 어려운 나라 중의 하나가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마다 메인이 되는 성격유형이 있는 것 같은데, 단연코 우리나라는 내가 살기 어려운 나라임은 확실하다.
저녁 내내 아시아나 가족회원 신청하다가 도라버릴 뻔. 아이핀 인증 무한 루프에 빠진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인증을 위한 인증, 1차 비밀번호부터 2차 비밀번호 설정, 계속 되는 안내 팝업창들. 도라버려.. 온갖 설명과 절차들을 보는 일이 피곤한 나는, 이런 단순하고 귀찮은 일들을 하다가 늘 현타가 오고야 만다.
이게 뭣인디. 뭣이 중헌디. 대체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거야.
사회 부적응자로 만드는 온갖 시스템에 화가 난다.
한국은 내가 살아가기 힘든 나라야.
십수년 전, 아니 20년 전이네. 인도로 처음 여행을 떠났다. 직항을 탔는지 아닌지 기억이 안나는데, 아니었나보다. 인디아 공항이었는지 사리를 입은 배툭튀 스튜어디스에 충격을 받았고, 그들의 암내에 또 한번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뉴델리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공항답지 않은 어두침침함. 그건 그렇다치고 공항 밖을 나오는 순간 갑자기 모여드는 택시 기사님들께 한번 더 정신을 빼앗겼다. 그래도 친오빠가 함께여서 마음이 불안하진 않았다. 택시를 타고 메인바자르로 향하는 40여분 동안, 신나는 인도 음악이 밤공기를 가득 채웠다. 차 문이 고장난 건지 겨울 밤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가는데, 지나가는 차들이 심상치 않다. 차 문이 없는 차도 있었고, 사이드 뷰 미러가 없는 택시도 태반이었다. 오히려 제대로 있는 차를 찾기 어려웠다.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델리 기차역 옆의 메인바자르의 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인도를 내가 좋아하게 될지.
숙소에 들어가자 마자 잠이 들었고, 느즈막히 일어나 밖을 나갔다. 첫 풍경을 봤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복잡한 거리, 사람들과 소들이 함께 뒤엉킨 길을 따라 걸으며, 이 곳에 오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비행기를 타고 몇시간 이동했을 뿐인데, 이렇게 다른 문화를 갖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늘 겉도는 기분으로 살던 마음이 여기에 발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땐 잘 몰랐지만, 인도의 무질서함과 자연스러움이 나를 편하게 해준 것 같다.
"나 인도가 정말 좋아질 것 같아."
첫날 커리 정식을 먹으며 오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달 여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니, 어떻게든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역시 한국에 오자, 아무렇게나 살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