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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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수업_다섯살아이
아이는 다섯살이다. 참 귀여운 나이다. 다섯, 다섯, 다섯. 입에서 다섯이라는 발음을 할 때마다 귀여운 꼬맹이가 폴짝 거리며 뛰는 모습이 연상된다. 다섯살 밖에 먹지 않은 아이는 세상이 제 맘대로 될 것 마냥 제 멋대로다. 동생이 조금만 잘못하면 라는 말을 하며, 동생이 자기 물건을 조금이라도 만지려는 동작만 취해도 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가위, 바위, 보는 늘 자기가 이겨야 하고, 이기면 한 손을 번쩍 들면서 라고 외친다. 다 보이는 곳에 숨고서도 못찾는 척을 해야 좋아하고, 내가 숨으면 나를 한 눈으로 슬쩍 보고서도 안본척 하다가 찾았다고 좋아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로 당당히 발음하며 놀이하는 아이. 다섯살은 그 정도의 나이. 세상살이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
2025.02.01 -
20대의 우울증
2008년 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고 지쳐서 우울증으로 질병휴직을 했다. 내 주변의 누구와도 상의한번 해본 적 없다. 그 시기 표면적으로는 우울했지만, 대학원 논문 마지막 학기라 논문을 쓰는데 집중하고 싶기도 했다. 아니다. 논문은 트리거일뿐, 내밀한 이유는 그냥 세상 밖의 이방인이 되고 싶었다. 무엇의 00이 아닌, 그저 내 이름으로 존재하고 싶었다는 게 제일 큰 이유일 것 같다.2008년 3월, 논문자료를 읽고 있었다.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고 그냥 자기엔 아쉽고 다가오는 날은 막막하게 여겨지던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방문을 딸깍 잠그고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주방가위도 아니고 그냥 학용품 가위를 갖고 싹둑싹둑, 이 역시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늘 생각을 혼자 하다가 어느 순간, 오늘..
2025.02.01 -
1학년 엄마가 된다는 일
아이가 1학년이 되면서 휴직을 했다. 이 휴직은 육아휴직이니, 액면 그래도 아이를 (잘) 기르겠다고 한 휴직이다. 휴직사유와 관계없이 나는 오랫만에 쉬는 게 참 좋았다. 아이 둘 다 학교에 가니,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조용한 오전을 누리는 게 참 기뻤던 것 같다. 다행히 채민이는 친구를 사귀었다며 좋아했다. 사실 친구를 못 사귈거라는 생각조차 안했다. 단 한번도 적응을 힘들어한 적이 없었으므로. 아이는 5살, 6살, 7살 모두 새로운 원을 다녔고, 채민이에게서나 원에서 어떠한 교우관계 문제로 피드백을 받아보질 못했다. 한편으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아이의 원 엄마들과 교류를 할 수 없는 처지였으니까. 아이의 등하원을 할머니가 해주셨기도 했고, 친분을 유지할만큼의 시간도 없었기에 나는 처음부터 누군..
2025.02.01 -
조지 아저씨네 정원
조지아저씨는 행복하다. 조지 아저씨는 꽃과 새와 동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작은 정원을 가꾸며, 바람에 흔들리는 꽃의 속삭임, 새들의 지저귐을 듣는다. 어느 날, 조지 아저씨는 옆집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높은 담장으로 막힌 옆집 정원을 '대담하게' 엿본다. 옆집정원은 조지 아저씨네 정원과는 다르다. 그 정원에는 '눈부시고', '위엄있는', '기품있는', 게다가 '우아하기까지 한' 장미, 백합, 카네이션이 가득하다. 조지 아저씨는 그가 본 모습을 작은 정원의 들꽃들에게 이야기 해준다. 아름다운 것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꽃들에게 나누고 싶었던 조지 아저씨의 마음과 다르게, 작은 정원에 사는 꽃들 모두 아저씨와 같은 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조지 아저씨네 꼬맹이 데이지..
2025.02.01 -
내 인생의 56페이지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고등학교 첫 날.그 전날 무슨 일이었는지 우리 가족은 모두 늦잠을 잤다.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날 깨우고선 정신없이 택시타는 곳까지 나를 데려다 주셨던가. 아니면 현관앞에서 돈을 쥐어 주시며 택시를 타라고 하셨던가. 확실히 기억나는 건, 실내화 가방 꼭 잘 챙기라는 말씀이었다. 평소 나는 물건에 대한 애정이 없기도 하거니와 물건을 늘 흘리고 다니는 아이였다. 택시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도 실내화 가방을 내 손에서 놓지 않았던 건 확실하다. 버스로는 두 세 정거장 정도의 거리여서 택시를 타니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지만, 이미 9시는 훌쩍 넘긴 시각이었던가. 교문 앞은 한산했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실내화가방이 내 손에 있다는 사실에 안심을 했다. 교문을 통..
2025.02.01 -
검정치마, <기다린만큼 더>
신청곡 연애할 때에는 루틴처럼 비슷한 시간에 전화를 주고 받잖아요.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워 자연스럽게 연인에게 전화를 하며 그 날 있었던 속상했던 일들, 화가 났던 일들, 외로웠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와 공감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가장 어려운 일이 함께 나눈 시간들이 어김없이 돌아오는데, 핸드폰은 무심하게 마치 한번도 안울렸던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그 시간의 공백만큼 허전했던 마음, 한 번씩은 다들 경험해 보셨을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별은 오랜 인연이건, 불꽃처럼 타오르다 식어버린 짧은 연인이건, 수 없이 많은 밤을 혼자 보내고 나서야 받아들여지는 지도 모릅니다. 잠이 오지 않는 긴 밤, 여러분의 작은 위로가 되고 싶은 DJ. He..
2025.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