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리

2025. 1. 31. 16:10무심한 날들

책을 수집하는 취미는 없지만 우리집엔 꽤나 많은 책들이 있다. 물론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의 서가에 비하면 세발의 피이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책장에 책을 맞춘다고 끈임없이 책을 속아내고 속아내어 늘 책장의 크기에 맞게 책을 채웠다.

선천적으로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지, 어떤 것이든지 많아보이면 정리를 하고 싶어진다. 함께 가야할 물건들이 많아지면 삶이 무겁게 느껴진다. 언제든지 나는 이곳을 훌쩍 떠날 수 있어야 하므로.

 

지난 추억들이 온몸에 달라붙어있는 듯한 기분이 썩 좋진 않다. 그렇다해서 내가 추억을 하찮게 여기는 인간은 아니다. 나는 미래지향적이기 보다는 과거지향적인 인간이다. 늘 과거의 추억을 곱씹고 되새김질하며 내 삶을 반성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버리는 것일까. 추억을 갉아먹고 삶을 이어나가면서 왜 과거의 기억과 달라붙어 있는 것들에 대해 그렇게 쉽게 한번에 정리해버릴 용기가 생기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정리되지 않은 과거의 흔적들이 싫은 것이다. 컴퓨터의 디스크 조각들처럼 제대로 기억이 되지도 제대로 잊혀지지도 않은 작은 흔적들. 물론 추억의 조각 하나가 많은 것들을 다시 기억나게 해주기도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처럼. 이것저것 마구 담아놓은 박스안에서 추억을 재생하는 물건들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건 상처가 다 아물기 전의 피딱지처럼 불편하게 가져갈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새살이 돋고 나면 그 상처가 마치 없던 것처럼, 한번도 상처나지 않았던 것처럼 살고 싶은 것이다.

 

때때로 작은 기억들이 불쑥 불쑥 올라온다해도, 그건 내가 꾸밀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추억들이 된다. 과거의 재생이 아니라, 과거의 창조라고 해야할까. 책장속에 가득한 책들을 보며 지난 추억이 달라붙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다. 책을 사고 책을 속아내는 과정을 통해 한번씩 삶을 덕는다.

'무심한 날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어는 어려워  (0) 2025.01.31
주말부부  (0) 2025.01.31
5학년 부장  (0) 2021.01.09
코로나 시대의 방학  (0) 2021.01.08
폭설  (0) 2021.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