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 00:20ㆍ에세이
경계
허물없이 좋은 사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내게도 그렇게 부를 만한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내 경계를 완전히 허물고 만난 적은 없는 것 같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편이라, 비교적 솔직하게 마음을 잘 내어 보이긴 했지만, 보여줄 수 있을 만큼의 속내였다. 더 내밀한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나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과 그만 하고 싶은 사람을 나도 모르게 구분지었다. 그 기준은 어떤 사실적인 판단에 기초한 건 아니었다. 전체적인 느낌이 대화가 통할 것 같다는 걸 막연하게 인식하는 정도. 이 사람과는 여기까지. 미리 벽을 치고 만난적은 없지만, 대화를 하다보면 사람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화의 깊이가 달라지곤 했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가까워지기 위해 속 깊은 이야기를 터놓는 일은 없다. 상대와 내가 어떻게 마주치는지 대화를 하기 전에는 알지 못하므로. 그리고 그건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비밀을 공유하지 않는다해도, 대화가 통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외롭다. 오히려 내가 두려운 건 경계로 인한 외로움이 아니라, 경계를 나도 모르게 풀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숨겨놓은 것들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해버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내 모든 것을 사랑했다는 사람에게도 눈물의 의미와 불안의 이유를 말해본 적 없다. 제정신을 갖고 있는 나도, 제정신으로 살 수 없는 나도 모두 나일 뿐이니, 그 조차 감싸안아야 하겠지만, 끝내 발설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독립된 물성을 지닌 존재들일 뿐, 살을 아무리 부비는 관계라 해도 그 물성을 허물 수는 없으니까. 네가 나를 꽉 안아준다고 해서 우리가 붙을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러니 다 괜찮다. 우린 모두 각자의 우주에서 홀로 빛나는 별일 뿐. 나의 빛을 네가 보고, 네 빛을 보는 걸로도 충분해. 그러니 난 나의 경계도, 너의 경계도 허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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