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_벽돌깨기라도 괜찮아

2025. 2. 1. 00:23에세이



휴대폰의 설정 즉 Setting을 바꾸기 위해선 톱니바퀴 모양을 클릭해야 한다. 설정을 바꾸기 위해 톱니바퀴를 누를때마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떠올린다.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간다. 굴러가는 일이 본래의 목적이라는 듯이. 구르지 않는 수레는 수레가 아니다. 내 삶도 마치 수레에 올라탄 듯, 정해진 대로 굴러간다. 톱니처럼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간다. 휴대폰의 설정을 변경하듯, 내 삶의 기본 세팅을 변경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삶은 벽돌깨기랑 비슷하다. 마치 벽돌을 깨기 위해 태어났다는 듯이 to do list를 적어놓고 한개씩 완료할 때마다 줄로 긋는다. 모든 줄을 다 삭제하고 나면 ‘보람’ 따위를 느끼기도 한다. 날마다 성실히 벽돌을 깨는 내가 대견스럽다(이 말은 틀린 말이다). 대견하다고 말하는 순간, 왜 벽돌을 깨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이 해결이 안되어 현타가 온다. 그 질문에 대한 답 대신 오직 걸을 뿐이라고 말했던 틱낫한 스님처럼, 나는 없고 오직 행위만이 있을 뿐이라고 위안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꽤 잘 살고 있다. 허무와 집착 사이에서 붕 떠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견딘다. 어차피 이곳에서의 삶과 저곳에서의 삶이 다르지 않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몇가지 있는 이 삶도 괜찮다고 생각이 든다.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자러 들어간 깊은 밤, 난 유튜브로 검정치마를 검색한다 <몽환적 감성의 끝>이라는 서브타이틀이 있는 회색 화면을 켠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 바람을 채우던 나를 떠올린다. 내 삶의 한 부분을 함께 했던 지난 사람들과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내게도 걸리지 않던 바람과 같은 시절이 있었지 하며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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