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년이 온다>

2025. 2. 1. 00:49서평

이 책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 소년이 주인공이긴 하나 소년의 시점은 나오지 않는다. 모두 주변 인물들의 시점으로 6개의 장이 이루어져 있다. 한강 작가의 또다른 책인 <채식주의자>도 마찬가지 구성인 것을 보면,  작가는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주인공의 특징을 독자 스스로 상상하기를 꽤 좋아하는 것만 같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책의 주인공인 동호가 실존인물을 토대로 했음을 밝히고 있다. 작가는 아홉살까지 광주에서 살았고, 그들이 살던 그 집에 새로 이사온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책은 그 아들(동호)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첫장의 화자는 '너'(동호) 이어서 나(동호의 친구 정대), 세번째 장인 일곱개의 뺨은 은숙, 네번째는 초등교사가 꿈이었던 교대 복학생(민수형과 같이 고문을 당했던), 다섯번째는 선주, 여섯번째는 소년(동호)의 엄마, 마지막 에필로그는 작가의 말로 이루어져있다. 각 장의 화자는 자신들이 겪은 일련의 비현실적(매우 현실적인)이고 비합리적인 사건들을 복기하며 동시에 그 며칠동안의 사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동호는 우리집 사글세방에 살던 동갑내기 친구인 정대와 같이 한낮에 시위대의 행렬에 들어가 걷는다. 정대의 누나였던 정미누나가 며칠째 소식이 끊겨있어서 그랬는지, 그들은 시위대와 같이 걷는다. 그때 총성이 울리며 도로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쓰러지고 삽시간에 사람들은 흩어진다. 동호는 정대가 빌딩 위에 숨어있던 저격수에 의해 총을 맞는 것을 보았지만, 그를 구하러 도로로 다시 뛰어들지는 못한다. 집으로 돌아온 동호는 절대로 데모하는 곳에는 가면 안된다는 아버지의 말을 뒤로 하고 마음속의 부채때문인지 분노때문인지 정대를 찾으러 도청으로 간다. 도청에는 시신들이 계속 들어오고, 그곳에서 시신들을 정리하여 관에 넣는 은숙누나와 선주누나를 만난다. 그곳에서 동호는 시신이 들어오면 간단히 인상착의를 정리하고 유족들이 오면 시신을 확인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리고 그날 광주로 계엄군이 진압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도청에 남기로 한다. 중학생인 동호는 엄마와 작은형이 집에 가자고 해도, 시민군이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끝끝내 무심히 그곳에 남는다. 미성년자이니 항복하면 죽이지 않을거야. 라고 민수는 말했다. 그러나 항복하며 걸어나온 동호는 총살당한다.

미성년자이니 네게 항복한다면 총살하진 않을거다. 라고 믿었던 순진한 사람들.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을 탈취해서 나눠갖고서도 총 한번 쏘지 못했던 시민군들. 도청에 끝끝내 남아 계엄군과 맞서겠다고 했던 그들의 삶은 여전히 비참하다. 은숙과 선주, 교대 복학생과 민수, 그리고 동호의 엄마의 입을 통해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 역시 그 사건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걸 보여준다. 죽은 자들에 대한 부채감과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 <채식주의자>  (1) 2025.02.01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1) 2025.02.01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4) 2025.02.01
위화, <제7일>  (0) 2025.02.01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2) 2025.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