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 00:48ㆍ서평
지난달 지역 독서모임 회원들과 어떤 책을 같이 읽으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책 이야기를 했다. 제목만 봤을 뿐인데, 이 책을 읽으면 미쳐 알지 못하는 깨달음이나 울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책은 좋아서 읽기 보다는 필요에 의해 읽게 되는데, 이 책도 그런 의미에서 읽어볼 만하다 싶었다. 마침 도서관에도 있어 빌릴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수 클리볼드는 1999년 5월에 있었던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 중 한 사람의 엄마이다. 이 책은 그녀가 이 사건을 겪으며 쓴 책이다. 읽는 내내 가슴이 몇번이나 눈이 붉어졌다. 이 책은 꽤 두꺼운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잘 읽혔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비난할 그런 살인자를 여전히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이 한권을 관통한다.
"날마다 무너진 심장으로 깨어나는 게 지긋지긋하다. 딜런이 보고싶고 내 삶이라는 악몽에서 깨어날 만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다. 딜런을 다시 내 팔로 얼싸안고 전에 그랬듯이 품 안에 폭 안고 싶다. 무릎 위에 앉히고 신발을 신겨주거나 같이 퍼즐을 맞추고 싶다. 딜런에게 말을 걸고, 이렇게 끔찍한 일은 생각도 못 하게 하고 싶다."
(p.164)
도덕성, 공감, 윤리 이런 건 한 번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 신념을 가르쳤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는 우리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해야 한다고, 딜런에게는 딱히 용돈벌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웃집 마당일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웃이니까. 또 문을 열며 나갈 때 뒤에 누가 따라오면 문을 잡아주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게 신사다운 행동이니까.
나는 기질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다. 내가 알고 신경쓰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모두 아이들에게 쏟아부었다. 슈퍼마켓에 갈 때도 그냥 냉장고를 채울 식품들을 사는 게 목적이 아니라 아들들에게 신선한 사과를 고르는 법을 가르치고 사과를 기르느라 고생했을 농부들을 생각하고 과일과 채소가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만든다는 것을 일깨우는 기회로 삼았다. '암적색', '선홍색' 같은 단어들을 알려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딜런에게 과일을 살살 바구니에 담는 법을 보여주고, 계산할 물건이 한 두개 밖에 없는 할머니에게 계산대 순서를 양보하고, 계산원과 눈을 맞추고 예의 바르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방법은 달라졌지만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야구시합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공감에 대해 이야기하며 스포츠의 근본적 메시지인 경쟁심을 상쇄하려고 했다. - (pp.417-418)
일반적으로 강력범죄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의 주변환경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 사람의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거나, 어린 시절 상처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런 사건은 내 주변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위안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보통의 부모처럼 최선을 다해 육아를 하는 엄마에게도 이러한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 있음을 말한다. 사춘기 에 접어든 아이가 어두운 주제로 작문을 한다해서 심각하게 생각할 부모는 많지 않다. 역시 게임을 평소보다 많이 한다고 하여, 치명적인 사건을 계획하는 거라고 불안해하는 부모도 없다. 물론 이 글의 작가는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자신의 부주의함을 후회하지만 대다수의 부모들 역시 마찬가지로 행동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낳은 자식이니 제일 잘 알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는다. 생각해보면 참 당연하다. 나 도 20대 시절, 끝을 알수 없는 우울감에 시달렸다. 그냥 지나쳤을만한 작은 사건도, 그 사람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 받는 영향이 다르다.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었던) 소외감을 느꼈고, 세상에 혼자라는 느낌을 가진 채 20대를 지나온 나는 딜런(가해자 중 한명)의 일기가 참 마음이 아팠다. 그 당시 방황하는 나를 부모님은 알지 못했다. 한곳에 있을 수 없어 방학만 되면 길 위에 서 있었다. 황량한 길을 달리는 버스위에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와 우리 부모님과의 간극만큼, 나 역시도 우리 아이들을 모를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슬프다.
아이를 키우면서 불안하고 답답할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책이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양육가설>이다.부모는 아이의 성격이 결정되는 데(유전적 영향을 제외하면) 별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아이들은 집 밖에서 또래들과 함께하는 환경 속에서 사회화되고 성격을 형성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옮긴이의 말 중
이 책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읽고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해진다. 이 책을 읽고 좀 더 아이의 정서적인 부분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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