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 14:02ㆍ서평
<넌 헤겔이 누군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를 만들어 낸 주인께서 나한테는 옛날에 그걸 공부하게 했단다. 우스운 것에 대한 성찰에서 헤겔은 진정한 유머란 무한히 좋은 기분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해. > p. 99
이 책 속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밀란쿤데라는 소설속에 등장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을 한다. 반대로 소설속의 주인공들 역시 작가가 자신을 이런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특징은 밀란쿤데라의 글에서 종종 보인다. 이 구절 외에도 샤를이 읽은 책의 친구들에게 읽어주면서 주인님이 후르쇼프의 <회고록>을 읽으라고 주었다고 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주인님이 누군가 싶었다가 나중에서야 이해했다. 생각해보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자신이 직접 등장하여 말을 하는 부분이 나온다.
밀란쿤데라의 소설은 인간의 조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삶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들에 둘러쌓여있다. 우리의 탄생, 인종, 성별, 위치, 시대 모두 우리는 단지 세상에 던져져 있을 뿐이지. 기껏해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봤자 사소한 것들에 불과한 것을 그 사소함에 목숨을 걸며 투쟁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작가가 그걸 긍정하는지 부정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러한 존재상황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작가는 소설의 제목에서도 드러냈듯이 무의미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라몽은 다르델로에게 설명한다. (작가가 하고싶은 말을 라몽의 말을 빌려 말하는 게 지나친 친절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르델로,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그 당시에 나는 무엇보다 당신과 여자들의 관계를 생각했어요. 당신에게 카클리크의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죠. - 하찮고 의미없다는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예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서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서도, 참혹한 전투 속에서도, 최악의 불행 속에서도 말이예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물론 다르델로는 의미의 축제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간이라 끝내 이 말을 좋아하진 않는다.
다르델로는 의미에 갇혀 사는 촌스러운? 인물이다. 고급스러움을 보여주고 싶어 빌보잔에 차를 마시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과 같은. 이를테면 그런 인간. 워낙 이런 사람들은 많고 많아 고급스럽기 보다는 지금은 진부하기까지 하다는 게 바로 이런 인물들이 갖고 있는 슬픔이다. 고급스러운 손짓, 눈빛, 과장된 추앙으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상상하며 웃었던 구절이 하나 있다. 칼리방이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에게 포도주를 따라주는 모습을 지켜보며 라몽이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지었던 부분.
<포도주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는, 처음에는 엄청 집중한 표정, 그다음엔 깜짝 놀라며 감탄하는 표정을 서로에게 보여 주더니 정말 기가 막힌다고 소리 높여 찬탄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의미의 축제로 대표되는 다르델로의 행동이 우스꽝스러워질때마다 라몽은 묘한 웃음을 짓는다.
반면, 칼리방은 이런 세상이 지루한 인물이다. 샤를과 같이. 그래서 그는 파키스탄사람인 척 하며 파키스탄어를 꾸며 말한다. 재미있으려고. 그러나 그 역시 재미를 얻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그가 파키스탄어를 하는 사람이건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이건간에 관심이 없다. 결국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즉 무의미의 시대를 견디지 못하고 애써봤자 실패로 돌아갈 뿐이다.
또 하나, 칸트의 도시가 칼리닌그라드로 이름붙여진 이야기.
이 역시 작가의 철학이 녹아나있는 구절이다. 칸트는 물자체라는 개념에서 모든 표상의 뒤에는 물자체가 있다고 말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본질을 상정하게 되고 본질을 말하는 철학은 참 고리타분하고 무겁게 여겨진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표상뒤에 변하지 않는 물자체는 없다고 하였다. 오직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인정했다. 백인백색. 나의 의지가 반영된 표상으로서의 세계, 너의 의지가 반영된 표상으로서의 세계. 우리에게 같은 표상의 세계는 없다. 스탈린은 자고새이야기를 농담삼아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진지한 부하들을 보며 그들의 생각에 조소한다. 반면 칼리닌이라는 인물은 스탈린에게 하찮음의 위대함에 대해, 삶의 진면목을 느끼게 해준다. 진면목이라고 해봤자 원초적인 욕구에 대한 참을성 에서 오는 위대한 숭고함이라고 해야할까. 그게 오히려 본질에 더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의 도시가 여전히 칼리닌그라드라고 이름붙여져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라몽이 파티에서 웃음을 짓는 장면들이 몇몇 나온다. 나는 그 부분이 바로 이 책에서 무의미한 시대의 행복을 향한 탈출구를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라몽은 의미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애써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소를 짓는다. 프랑크 부인이 떠나며 취한 제스처와 말들. < 엄지와 검지로 깃털을 잡고서 여전히 천장으로 손을 뻗은 채 천천히, 춤추는 듯한 걸음으로, 가볍게 폴짝 거리며 출구 쪽으로 나갔다.>
한히 좋은 기분에 도달해야만 우리는 진정한 유머를 구사하며 무의미의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무한히 좋은 기분이라는 그 지점에 서야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다. 이 시대는 무의미의 시대, 배꼽의 시대가 아니던가.
(배꼽에 대한 이야기는 또다른 한 축의 이야기라 귀찮아서 그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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