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냐탈라야 2021. 1. 6. 23:55

눈이 많이 온다.

 

갑작스러운 폭설로 교통은 마비가 된 것 같은데, 집에 혼자 있으니 알 길이 없다. 남편은 퇴근하다가 뉴스를 보더니 안되겠는지 시댁으로 간다는 말을 남겼다. 월요일에 아이들을 친정으로 보냈기에 집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공간. 젊은 날은 이런 시간들이 주체못할 만큼 있었는데, 이젠 이런 시간들이 쉽게 주어지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말았다.

 

환한 거실 빛 때문에 창 밖이 보이지 않아 불을 다 껐다. 창 밖으로 내리는 눈은 참 조용히 소복히 쌓인다. 이 순간을 간직할 길이 없어 음악을 신중하게 고른다. 오랫만에 에피톤프로젝트, 짙은을 연달아 듣는다. 잔나비도 혁오도 참 듣기 좋다.

 

글을 오랫만에 쓰려니 무엇을 써야할지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하다.

 

언젠가 동학년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늘 일기를 썼는데, 아이들이 커가는 시기의 일기는 없다는 말이었다. 아이들을 기르느라 바빴고, 그 시간을 잘 살아왔는데도 지나고 나니 허전하더라는 말. 생각해보니 나도 그렇다.

 

언제나 지나가는 시간들의 기억을 글로 남기곤 했다. 하지만 최근엔 아이들을 중심으로 쓴 글 뿐이고, 글도 아니고 휘리릭 그날의 기억을 남긴 인증 사진 몇장들 뿐. 정리되지 않는 핸드폰엔 수천장의 사진과 동영상이 있지만, 굳이 정리도 하지 않는다. (한편 이 사진들이 실수로 몽땅 날아가 버린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때도 있다)

 

그럼 나는 왜 날마다 쓰던 글들을 못쓰게 된 걸까. 시간이 있긴 했지만 그건 시간이라기 보다는 할 일과 할 일 사이를 이어주는 그정도의 아주 짧은 순간들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기엔 내 앞에 놓인 잡다한 일들이 너무 많아 내 머릿속은 늘 복잡하고 정신없었다. 마치 캐쉬 메모리처럼 파편의 기억들만 가득한 시간. 지나고 나면 무얼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나는 정신없이 바빴다는 사실만 기억난다.

 

2021년 나는 42살이 되었다. 40대가 다 흘러도 나는 아이를 기르는 일을 계속 하게 되겠지. 그 일이 싫은 건 아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싫다. 나중에 잠깐씩 들춰볼 수 있다면 나는 괜찮을 것 같다. 이젠 아주 소박한 꿈을 다시 꾼다. 그저 기록의 욕구를 채우는 행위.

 

아무도 모르는 익명의 공간, 반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