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최초의 기억_엄마가 되는 것

수냐탈라야 2025. 1. 31. 17:34

#13. 최초의 기억

 

 

공기처럼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들이 있다. 내 몸에 대한 인식, 즉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생각은 배워야 하는 것도 깨달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아기를 출산하기 전까지는.

 

배가 조금씩 불러왔다. 임신한 여자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새삼스럽지도 않다. 배 속에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흑백 초음파사진을 통해서만 알 뿐, 느끼진 못했다. 시간이 흘러 뱃속이 꿀렁대기도 하고, 배가 맘대로 움직였지만, 아기가 움직이는 거라고 하니 아기인가보다 했다. 배만 불러왔을 뿐, 특별히 내 몸이 변하진 않았다.

 

출산하기 직전까지도 출산하고 나서도 알지 못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정확히 출산 후 2일 즈음 지나서부터 자각했다. 아기가 나왔으니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탯줄이 잘린 너는 내 몸에서 분리가 되었는데, 마치 우리가 한 몸인 것 반응한다. 아기가 울면 가슴이 찌릿하면서 가슴이 부풀었다. 한 번도 기능을 해본 적이 없던 가슴은 목적과 기능이 확실한 먹이 주머니라는 사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내 몸은 젖 공장이 되었다. 나의 피와 살을 원료 삼아 젖을 만들었다. 내 몸은 이상하게 변했다. 가슴은 엉덩이처럼 부풀었고, 엉덩이는 절벽이 되었다. 가슴이 쪼그라들었다가 부풀었다가 쪼그라들었다가 부풀었다가를 반복했다. 더 한건 가슴에서 젖이 흐르는 것.

 

“육아는 장기전이잖아요. 지치지 마세요.” 출산이 비슷했던 그녀는 힘들어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장기전이라는 말에 가슴이 툭 내려앉았다. 잠깐 겪는 게 아니라 장기전이라고? 나처럼 초산인 그녀는 어떻게 여자에서 바로 엄마가 되었을까. 처음 본 아기에게 자신을 엄마라고 소개하며 웃는 그녀의 모습이 참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나는 왜 모든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젖이 계속 차오르는 가슴을 보며 ‘인간은 포유동물이다’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한다. 내 몸이 그걸 증명한다.

 

동물처럼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윗도리를 벗고 아이에게 젖을 주는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단순하지 않다. 샤워할 때에는 문을 잠그는 게 당연했고, 카페에서 여유롭게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게 당연했던 인간으로서의 나는 다시 태초의 동물이 되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은 없어져.” 아기를 낳기 전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던 말.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여자의 몸에서 엄마의 몸이 되는 건 동물이라는 자각 없이는 안 되는 거라고, 방법도 대안도 없이 동물이 되라고. 변화를 인정할 새도 없이 밀려 들어오는 현실에서 나는 참 서툴게 느리게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