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날들

주말부부

수냐탈라야 2025. 1. 31. 16:12

아침에 친정엄마와 싸웠다. 나는 정신이 없이 준비하고 나가야 하는데 엄마가 오롯이 채이를 보지 않고 집안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유축을 하는데 채이가 내 옆에서 알짱거렸고, 기어코 보행기를 잡고 일어서다 바닥에 쿵하고 머리를 박았다. 나는 야속했다. 굳이 꼭 그 바쁜 아침에 빨래를 삶아야 하는지, 설거지를 해야하는지. 굳이 꼭 바닥을 닦아야 했는지. 하지만 엄마는 생각이 달랐다. 그나마 내가 있을 때 집안일을 하나라도 더 해야 한다는 것. 누구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으니 서둘러 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집안일을 하시니 채이를 봐야 했다. 이미 늦었는데 엄마가 채이가 우니 또 젖을 주라하고, 당연히 채이는 먹지 않고. 엄마는 그 틈에 또 이불을 개키러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속이 상해서 엄마에게 채이좀 보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지각인데 아침부터 계속 일을 하면 난 언제 가냐고. 하지만 엄마는 내게 지각할 것 같으면 일찍 일어나지 그랬냐고, 자신도 내가 있을 때 그나마 하나라도 더 일하려고 하는거란다.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않다. 아기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싸운 것도 그렇고, 엄마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내게 그런식으로 할거면 앞으로 상종도 안하겠다고 소리친것도 그렇고.  

 

채이가 커간다. 이제는 기저귀 갈때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평소라면 어떻게든 입혔겠지만 그냥 두었다. 움직이는게 더 편한지 여기저기 신나서 돌아다닌다. 내 다리를 집고 일어나려고 애쓴다. 이젠 엎드렸다가 혼자 앉아있고, 앉아있다가 손을 뻗어 무엇이든 잡히는게 있으면 잡고 일어난다. 오랫동안 엎드려있기만 하고 한치 앞으로 나가지도 못했는데, 참 순간이구나. 기어다닌지도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이제 서려고 애쓴다. 조만간 걸어다니고 그리고 뛰어다니겠지.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기를 보니 매 순간 눈에 다 담아놓고 싶을만큼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편하고 좋기도 하다. 갓 태어났을 때는 언제 크나 싶었는데, 아기는 조금씩 세상을 향해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있다.

 

아기가 자란만큼 나는 얼마나 엄마로서 컸을까 생각하니 준비가 아직도 안된 것만 같다. 지금은 친정엄마가 아기를 봐주시니 퇴근 후에 잠시 아기를 보면 되는데, 그것도 때때로 버겁다. 아기를 돌보는 일이 주된 일인데도 여전히 내것을 챙기려고 애쓴다. 나는 친정에서 아기와 둘이 있고 남편은 주말에만 보는 것도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주말부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거라더니 그말이 꼭 맞나보다.

 

주말부부의 장점과 단점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만 나는 주말부부를 선택했다. 정답은 있었다. 남편과 나, 그리고 아기 이렇게 세식구가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게 맞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3개월 출산휴가만을 쓰고 바로 복직을 했고, 할머니에게 아기를 맡겼다. 아기를 친정에만 맡겨둘 수 없었기에 나는 친정에서 출퇴근을 하며 아기를 돌보고, 남편은 거리상 친정집에 있을 수 없었기에 집에서 따로 기러기생활을 이어간다. 할머니에게 드리는 보육료와 양가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을 제하고 각종 공과금과 카드값은 내 월급으로 유야무야 가능하고 남편 월급은 고스란히 저금을 한다. 현재 부채는 없지만 앞으로 돈을 모아 집도 사야한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갈거란 생각을 하면 일을 안할 수 가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일은 나의 가치관에 한참이나 먼 이야기들이었는데, 결혼한 후로 나는 현실에 발묶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베짱이처럼 살다가 개미처럼 살려니 답답하고 짜증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이 생활이 힘들어지면 그 스트레스가 남편에게 오롯이 전해진다. 친정엄마 눈치도 많이 보인다. 한없이 내 편일거라 생각했던 엄마였는데, 지금은 많이 불편하다. 결혼전엔 수십년을 함께 지냈던 부모인데도 결혼을 하고 나니 내 방도 내 방같지 않고 엄마도 마냥 엄마가 아니다. 채이를 돌봐주셔서 더 그런것 같다. 마냥 좋았던 엄마 눈치도 보이고, 엄마로서 내 위치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휴직을 하고 오롯이 엄마로서의 역할만 할까 싶은데도 솔직히 잘할 자신도 없다. 전업이 되면 집안일도 해야하고 식사준비도 해야하고 아기도 돌봐야 하고. 그야말로 온갖 일들이 내게 떠넘겨질 거란 생각이 들면 손사래를 치고 사양하고 싶다. 결국 내 돌파구란 기껏해야 친구들을 만나 잠시라도 육아와 직장에서 벗어나 수다를 떠는 일이고, 문화센터에서 커피수업을 듣는 것. 또 퇴근 전에 두어시간 혼자만의 시간을 갖을 수 있다는 것. 그러고보니 나름 내 시간도 충분한 것 같긴 하다.

 

생각해보니 친정엄마에게 죄송스럽다. 몸도 편치 않는데 아기도 돌봐야 하고 집안일까지 다 하셔야 하니 말이다. 새삼 아침에 엄마에게 소리를 지른 게 마음이 걸린다. 엄마는 낮엔 아기도 봐야하고 저녁엔 저녁상도 차려야 하고. 자기전까지는 계속 일 투성이구나. 친정엄마이니 어떻게든 풀리겠지만 더 골이 깊어지기 전에 조금씩 풀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