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위화, <제7일>

수냐탈라야 2025. 2. 1. 00:47

제목이 특이한데도, 입에 잘 붙어서 잊히지 않았던 위화작가의 <허삼관매혈기>. 피를 팔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주인공의 삶을 다룬 책이다. 익히 들어왔던 그 책이 영화로 나왔고 우연치 않게 티비를 통해 보게되었다. 하정우가 감독 주연한, 페이소스가 짙은 영화였다.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싶었는데 마침 학교에 있어서 빌려서 보았다.

주인공은 철길에서 태어났다. 임신 9개월의 생모는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배가 아파 변소에 들러 볼일을 본다. 힘을 주는 순간 뱃속에 있던 태아가 변기구멍으로 떨어지고 만다. 아기는 탯줄이 잘리며 철로 사이로 떨어진다. 다행히 선로를 전환하던 전환공이 아기를 발견하여 키운다. 결혼도 안한 21살의 그는 누군가 철길 사이에 아기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그 아기를 돌보아 키운다. 선량하고 성실하게 자란 그는 도시로 나가 취직을 하여 예쁜 아가씨와 결혼을 하지만, 이혼을 당하고 다시 철길 옆의 집으로 돌아온다. 늙고 병이 든 아버지를 간호하다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는 아픈 몸으로 집을 나간 후,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과외선생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려던 그는 과외하러 간 아파트가 강체철거된 것을 발견한다. 그날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며 신문을 보다가 주방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주인공은 죽는다.

이 책은 주인공의 죽음 이후, 7일간의 기록이다. 주인공은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떠돈다. 장례를 치르지 못한 사람들이 머무는 그곳은 해골사람들로 가득하다. 아내를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한 사람, 남자친구가 짝퉁 아이폰 4s를 사줬다며 자신을 속였다고 죽은 여자, 그 여자의 묘지를 마련하기 위해 신장을 파는 바람에 휴우증으로 죽은 남자, 강제철거되는 바람에 미처 아파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부부(그들은 업무중에 순직했다고 세상에 알려진다.) 등등.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시선과 달리, 문체가 가볍고 간결하여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다. 화장터, 즉 빈의관에서도 계층에 따라 대기하는 의자가 달라진다. 가난한 서민들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유골함을 비싸게 주고 샀다며  불평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소파에 앉아 자신의 묘지를 자랑한다. 시에서 강제로 철거하는 바람에 사망한 사실은 엄폐되고 업무중에 순직하게 되었다고 포장되는 사회, 의료쓰레기로 분류된 영아사체들이 강물에 떠내려가자,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화장했다고 은폐하는 사회. 또 믿을만한 식당은 이쪽 세상의 식당과 고위직이 많이 사는 중난하이에 있는 식당 둘 뿐이라며 냉소한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삶은 부조리한 세상과는 별개로 따뜻하고 편안하게 그려진다. 철로에 떨어진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삶을 희생한 아버지, 친엄마처럼 주인공을 돌봐준 아줌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내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볼 수 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조금도 두렵지 않단다. 내가 두려운 건 다시는 너를 못보는 거야."

개인적으로 이 책이 죽음이후의 삶를 다룬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사후에도 만날 수 있다면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