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수냐탈라야 2025. 2. 1. 00:50

흔하디 흔한 성격을 가진 두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에 순응하며 살며 누구나 꿈꿀만한 소박한 행복을 꿈꿨는데, 그들은 불행해지고 말았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커다란 식탁에 다같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는 풍경은 내가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어디선가 본 장면처럼 선명히 떠오른다. 그런 장면은 누군가의 희생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결혼 전에는 알지 못했다. 아마도 이 책의 주인공인 데이비드와 헤리엇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그들은 겪어보지도 않은 채 그저 대저택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런 풍경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덜렁 대저택을 구입하고, 계획없이 아기들을 제조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큰 흠은 아니었다. 데이비드에겐 부자아빠가 있었고, 해리엇에겐 육아를 책임질 엄마가 있었다. (참 흔하다) 그들은 어린 아이들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육아의 고충을 그대로 겪는다. 보통 그런 경우 스스로 책임질 수 없으면 더이상 출산을 하지 않는 게 보통인데, 그들 부부는 계속 아이를 낳고 싶어한다. 귀여운 아기의 백일사진이 육아의 전부가 아니다. 임신기간의 잠못드는 날들, 출산 후의 통증, 밤잠을 잘 수 없는 수많은 날들이 오히려 진실이지만, 우린 헝크러진 머리를 하고 추레한 옷을 입은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진 않는다. 해리엇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설정하고 도달하려고 애쓴 건 아닐까. 알고보면 신기루였던.

다섯째 아이의 탄생이 그들의 행복을 깨뜨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섯째 아이를 괴물로 만든건 그녀 자신이라고 말한 길리 박사처럼, 괴물은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정도의 차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쉽게 괴물이 되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벤은 일반적인 우리 아이들처럼 사랑스러운 꼬마악마는 아니다)  한장의 행복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남편과 나는 열심히 일해야하고, 일상을 컨트롤 해야하며, 없는 시간을 쪼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그건 오롯이 우리의 책임이다.

벤이라는 인물은 아주 사소한 작은 틀어짐만으로도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가 지탱하고 서 있는 발밑이 모래처럼 쉽게 부서지기 쉽다는 것. 입시와 구직의 어려움, 실직의 위험, 노후의 불안 등, 우리의 행복은 사소한 것에서 틀어진다.

평범한 꿈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 우리는 쉽게 좌절할 수 있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