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 인생의 56페이지

수냐탈라야 2025. 2. 1. 00:25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고등학교 첫 날.
그 전날 무슨 일이었는지 우리 가족은 모두 늦잠을 잤다.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날 깨우고선 정신없이 택시타는 곳까지 나를 데려다 주셨던가. 아니면 현관앞에서 돈을 쥐어 주시며 택시를 타라고 하셨던가. 확실히 기억나는 건, 실내화 가방 꼭 잘 챙기라는 말씀이었다. 평소 나는 물건에 대한 애정이 없기도 하거니와 물건을 늘 흘리고 다니는 아이였다.

택시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도 실내화 가방을 내 손에서 놓지 않았던 건 확실하다. 버스로는 두 세 정거장 정도의 거리여서 택시를 타니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지만, 이미 9시는 훌쩍 넘긴 시각이었던가. 교문 앞은 한산했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실내화가방이 내 손에 있다는 사실에 안심을 했다. 교문을 통과하는 순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고 책가방을 차에 놓고 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둘러 뛰어갔지만 이미 택시는 가버리고 없었다. 터덜터덜 실내화 가방만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학년 교실 복도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아이들은 모두 긴장한 채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었다. 나는 뒷문을 슬며시 열고 공기처럼 가볍게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내가 등장하자 마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세수도 안한 산발머리의 여자아이의 등장은 첫날의 무거운 분위기를 한 순간에 팡 하고 깨트렸다. 옆자리엔 새하얀 얼굴에 5미리는 되어 보이는 무테 돋보기 안경을 쓴 여자 아이가 새침하게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아 머리가 반쯤 벗겨진 담임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 버렸다. 귀부터 목덜미까지 불타는 느낌이었다.

가방은 어딨니? 라는 담임선생님의 질문에 택시에 두고 내렸다고 대답을 하는 순간, 또 다시 교실 여기저기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망했다. 첫 이미지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첫날의 존재감 덕분에 3년동안 꽤 즐겁게 학교 생활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