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의 단상_신문지 꽃다발
9. # 신문지 꽃다발
퇴근한 남편과 저녁을 먹으러 집 앞 광장에 나갔다. 바깥 공기는 낮보다는 참을 만하지만 여전히 열기가 남아있다. 무엇을 먹을까 돌아다니다가 꽃집에서 꽃을 좌판에 쌓아놓은 게 보인다. 보통 이 거리엔 좌판이 없다. 좌판을 펼쳐놓는 순간 신고하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3,000원이라고 붙은 종이를 보며 지나치다가 한 송이에 3,000원인지 한 다발에 3,000원인지 궁금해서 다시 돌아와 물어본다. 한 단에 3,000원이란다. “아침에 경매가로 받은 금액, 그대로 파는거에요.” 이해는 안 되지만 수량조절을 잘 못 해서 한시적으로 염가로 파는 것 같다.
분홍빛이 감도는 하얀색 장미꽃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중인데, 꽃집 아주머니가 거든다. “이 꽃이 경매가가 제일 높은 꽃이에요.” 나는 하얀 장미꽃 한 단을 달라고 말한다. 주인아저씨는 파 한 단을 집듯 꽃을 집어 들더니, 가위로 줄기에 달린 잎을 순식간에 정리하신다. 그리고 신문지로 둘둘 말아 내게 건넨다. “아, 신문지에 싸주시는 거예요?” 3,000원 어치 꽃을 사면서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네, 꽃은 신문지에 싼게 오래 가요.” 당연한 말이 되돌아왔다. 시금치도 대파도 모두 한 단이라고 불리지. 대파나 꽃이나 모두 식물인건 매한가지. 신문지에 싸는 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나는 천 원짜리 석장을 조심스럽게 건네고, 신문지에 둘둘 말린 대파 한 단, 아니 장미꽃 한 단을 받아들었다.
여러겹으로 포장된 꽃다발은 라벨이 붙은 전용 종이백에 조심스럽게 담기는 경우가 많다. 보통 꽃다발은 색색의 꽃만 가득하고 초록색 잎은 정리하는게 대부분이나, 실제 장미꽃 한송이에 달려있는 잎은 매우 무성하다. 내가 받은 꽃도 줄기의 절반부터 아래까지 모두 정리가 된 상태인데도 잎이 아직 많이 달려있다.
연애시절엔 들꽃을 꺾어주는 남자친구보다는 꽃다발을 선물하는 남자친구가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3,000원 짜리보다는 30,000원 짜리가 나으니까. 당시의 나는 화려한 꽃다발을 갖다 주는 사람은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렇다고 들꽃이 막 좋았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였을까. 어느 날은 예쁘게 포장된 꽃다발을 들고 브랜드가 된 것 마냥 고개를 들고 걸었는지도 모른다. 샤넬백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정도의 허영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비교적 꽃다발보다는 들꽃에 가까운 연애가 많았지만, 가끔은 꽃다발을 받고 싶었다.
지금도 생각이 아주 다르진 않다. 그 때는 화려한 꽃다발이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비교적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정도.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안 사는 것과 못 사는 것의 차이, 못 먹는 것과 안 먹는 것의 차이는 그리 가깝지 않다.
최근에 티브이에서 대선 후보자 한 명이 한 식당에서 넥타이를 풀고 소주를 마시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을 촬영하려고 수많은 카메라가 몰려 있었다. 저 사람은 실제로 소주를 자주 마시는 사람일까, 와인을 자주 마시는 사람일까 생각했다. 소주만 먹어야 하는 사람과 소주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어쩌면 나는 살만해져서, 신문지에 둘둘 쌓인 꽃도 좋아하게 된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젊은 날, 꽃다발을 줄 수 있는 남자친구를 바란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당시 내게 들꽃밖에 줄 수 없던 그 남자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