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공교육 멈춤의 날

수냐탈라야 2025. 2. 1. 01:26

글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의 시간만 계속 흐른다. 그래도 학생들을 지도하는 담임으로서, 두 아이의 학부모로서 어떤 형식으로든 한번은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선생님들끼리 모이면 학생 지도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게 된다. 교사로서 바르지 않은 행동에 대해 어느 수준에서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어,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학교에선 세상 친절한 사람처럼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가볍게 지도하고, 정작 집에 와서는 내 아이의 문제행동을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아이의 잘못을 눈감고 지나간 내 모습에 화가 나서 더 심하게 혼을 내기도 했다. 일관적이지 않은 내 모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학교는 즐거운 곳이어야 하고,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행복해야 한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디폴트값이 되었다. 이런 공간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나는 본연의 업무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려고 하고, 아이들은 끊임없이 밀고 당기기 하며 놀 궁리를 한다. 놀려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을 끌어당겨 공부하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당연한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40분이라는 수업 시간 동안, 어떤 아이는 40분을 집중하고, 어떤 아이는 5분도 집중하지 못한다. 100퍼센트 집중해서 글을 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무 의욕도 없이 대충 글을 휘갈기는 아이도 있다. 그래도 40분은 공평하게 흐른다. 이 시간이 모여 1년, 6년, 12년이 된다. 40분은 짧지만 12년은 내 인생에 무시하지 못할 시간이다.
  공부는 즐겁지 않다. 즐겁지 않은 공부를 하려니 아이들은 집중하지 못한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몇몇 아이들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 분위기는 쉽게 전염된다.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 게임형식을 빌려오고, 혼자 해결하길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아져 짝별, 모둠별 수업을 한다. 필연적으로 무임승차하는 아이들이 생기지만, 흥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많지 않다.  
  문제집 수십 권 보다 스스로 정리한 노트 한 권이 더 값지다. 책 수십 권을 읽는 것 보다, 한 권을 제대로 읽고 깊이 생각하는 게 더 낫다. 공부가 즐거운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학생은 손에 꼽는다. 책 한 권 읽는 게 힘들고, 내 생각을 담는 글 한 편을 쓰는 일이 힘들다면 제대로 다시 공부해야 한다.
  공부뿐만 아니다. 교사의 본연 업무이기도 한 생활지도라는 측면은 더 심각하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뛴다. 교실에서. 복도에서, 계단에서 심지어 급식실에서도. 아이들은 쉬지 않고 떠든다. 쉬는 시간에, 수업 시간에, 급식시간에.  한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 뛰고 떠드는 학교가 상상이 될까 모르겠다.
  친구를 때리고 건성으로 미안하다는 아이들, 친구의 물건을 함부로 쓰고 망가뜨려 놓고 미안한 기색도 전혀 없이 웃는 아이들 앞에서 조차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제한적이다. 그저 말로 규칙을 지켜 주십시오. 그러다가 안 되면 하이클래스에 안내를 한 번 더 하는 정도뿐이다. 하이클래스에 올릴 때도 조심스럽다. 혹시 내가 누군가를 겨냥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검열한다.
  9월 4일, 공교육 멈춤(이 아니고 정상화)의 날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누군가에겐 징계를 각오하면서도 한 용기 있는 행동이지만, 누군가에겐 집단 이기주의로 보일 수 있음을 알았다. 누군가는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한 집단행동이라 말했고, 누군가는 응원의 말을 했다.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 9월 4일이 어떤 날로 기억될지는 앞으로의 교육이 어떻게 변할지에 달려있다.